[인사이드 시민] 7기 박동순 이사_"우리의 시간은 사회적 책임을 가지는 시간입니다"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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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시민'은 시민의 사람(人사이드)을 소개하는 의미와 시민 속으로(inside)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시민의 주축 중의 한 구성원인 이사진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상기하고, 또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  회원님들과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이번 인터뷰이는 박동순 이사님(한국YWCA연합회 비전기획팀 책임 / 국장)입니다. 30여 년을 YWCA에서 보내며 안양YWCA 최연소 사무총장을 지냈고, 지금은 연합회에서 조직의 지속가능한 구조를 고민하고 계십니다. 전국 53개 지역YWCA의 법인 분리, 이른바 '재구조화'를 3년 만에 마무리한 뒤에는 그 경험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묶인 비영리·공익법인』이라는 책으로 남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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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박동순


Q. 요즘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업무예요. 최근 들어서는 조직의 지속가능한 구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YWCA가 큰 조직처럼 보일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오래된 조직들은 자산이 유동성 있는 금융 자금에 묶여 있지 않거든요. 게다가 저희 중앙 조직은 시민단체로서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국가 보조금 없이 운영하고 있어요. 지역은 기관 위탁 같은 걸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중앙 조직까지 그런 관계가 되어버리면 목소리를 내기가 정말 힘들어지니까요. 대신 운영에 재원이 많이 드니 모금이나 기부 구조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YWCA가 2015년부터 세종에 NGO를 지원하는 거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 단위 중앙 단체들과 부지를 분양 받고 한국NGO센터 설립을 추진해왔는데 오랜 논의를 거쳐 현재 공사가 진행 중에 있고, 내년 상반기에 완공하고 개관할 예정이에요. 건축비를 한꺼번에 마련할 수 없어서 우선 단층짜리 1단계 건물을 짓고 그곳에서 활동가들의 교육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Q.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세요?

기본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완전히 내향형이거든요. 대외적으로는 활발해 보이는데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 됩니다. 멍 때리거나 넷플릭스를 정주행하는 편이죠. 주변에서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한정된 에너지를 일에 많이 쓰긴 해요. (웃음)


#무서울 것 없이 일하던 시절

"완전 햇병아리 간사 시절엔 정말 무서울 것 없이 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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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활동가의 궤적에 오르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아무래도 대학 때의 경험이죠. 제가 91학번인데, 그전까지는 사회에 대한 일체의 관심이 없는 고등학생이었어요.

91년도가 많은 열사들이 있던 때였잖아요. 사람이 공권력에 의해 죽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고, 광주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5·18 영상을 보면서 정말 많은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완전히 부정 당하는 경험이었죠. 그러고 나서 사회과학 서적을 미친 듯이 뒤졌어요. 학교 서점에 죽치고 앉아 전공서보다 그런 책을 더 많이 봤고요. 수업 대신 매일 집회 기획하고 거리에 가는 게 일이었어요.


Q.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셨는데 복지관으로는 가지 않으셨어요.

'나는 복지관은 못 가겠구나' 싶었어요. 전공 공부랑 담을 쌓기도 했고요(웃음). 정부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지침대로만 일하는 건 불가능하겠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YWCA에 가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선배들이 제가 YWCA에 갔다니까 다들 깜짝 놀랐죠. "네가?" 하면서요. 당시에는 명확한 의제중심의 시민단체 활동을 생각했는데 우연히 안양YWCA에서 운동했던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 집도 안양이었거든요. 전국 조직인 YWCA에서 경험을 좀 쌓고 소규모조직이라도 여성운동이나 주민자치운동에 집중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잠시 머물 생각이었죠. 그게 33년 전입니다. (웃음)


Q. 밖에서 보던 YWCA와 안에서 겪은 YWCA는 달랐나요?

달랐어요. 같은 시민운동을 하더라도 회원의 기반과 지역에서의 영향력에 따라 그 목소리가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다르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어떤 단체에 있든 내가 하고 싶은 운동 의제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할 때, 시민들의 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구나 싶었어요.

완전 햇병아리 간사 시절에 정말 무서울 것 없이 일했던 것 같아요. 조직에서는 "쟤 뭐야" 할 정도였죠. (웃음)


Q. 지역에서 하신 활동들이 궁금해지네요.

아무래도 햇병아리 간사 시절일 때 생각이 많이 나요. 지역은 시민들과 직접 호흡하는 곳이라 연합회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당시는 지방자치가 본격화되기 직전이라 말도 안 되는 지방 의원도 많았고, 시민 스스로 시민단체의 필요를 느끼던 시기였죠. 할 일이 눈에 정말 많이 보였어요.


그때 '수도권 주민자치 연구모임'이라는 학습 모임에 들어가게 됐는데, 지방자치 연구를 시작하던 학자들과 현장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였어요. 20대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가자마자 녹취를 담당했는데,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녹음을 두세 번씩 듣고 오타 교정까지 하게 됐어요. 그게 정말 큰 공부가 됐고, 이걸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할까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1996년 의정지기단을 만들어 2003년까지 활동했고, 문제가 있는 지방 의원 사퇴운동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겠다 싶어 시도한 게 시의원 윤리 실천 조례였어요. 1999년 안양에서 제일 처음 했습니다. 전문가들께 자문을 받고 초안을 잡아 조례제정운동을 했는데 당시엔 시민이 직접 발의할 수 없어서 청원소개의원을 섭외해야 했어요. 지금은 그 조례가 전국에 다 마련되었더라고요.


이듬해에는 여성 후보를 만드는 일도 했어요. 당시 여성은 주로 당선 가능성 없는 곳에 배정해 공천 비율만 맞추는 일이 허다했거든요. 그래서 '가'번 배정 운동을 해 저희 지역에서 공천을 받아냈고, 여성정치네트워크도 만들었습니다. 여성 의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제 당선을 위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선거 로고송도  안양YWCA 어린이 회원 섭외해서 직접 녹음해서 돌리고 선거 기간 중 여성 의원 캠프 지원하느라 YWCA에 출근을 못 할 정도였어요. "저 자르셔도 돼요, 남성 의원만 있는 의회에 여성들이 꼭 들어가는 일을 꼭 해야 합니다" 하면서요. (웃음)

2001년에는 케이블TV를 상대로 소송도 했어요. 저가 기본형이 있는데도 10만 가입자 전체를 자동으로 상위 계약으로 바꿔버린 건이었습니다. 요금은 기업이 올릴 수 있지만 계약 자체를 바꾸는 건 불법이잖아요. 원고를 모집해 소송 했고, 3년 만에 승소해 10만 명에게 전부 환불 해줬습니다.


Q. YWCA라는 조직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었을까요?

그럼요. 제 개인이 아니라 YWCA가 추진한 일이었으니까요. 그 활동들이 YWCA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았다면 계속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YWCA는 지역 안에서 아주 진보적인 단체부터 아주 보수적인 단체까지 아우르는 역할을 하는 조직이에요. 이런 조직이 시민사회의 중요한 의제에 목소리를 실어줄 때 얼마나 큰 역량을 발휘하는지 직접 경험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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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중앙 사이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하려는 사람이 없을 때, 뭔가 제 안의 책임감을 찌르면 저도 모르게 움직여져요."

Q. 연합회로는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제 이력이 YWCA 안에서 좀 독특해요. 지역에서 9년 쯤 있다가 여러 고민이 생겨 이만 그만둘까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약한 게 그거예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뭔가 제 안의 책임감을 찌르면 저도 모르게 움직여지는 것. 그러고 나서 꼭 후회해요. "내가 왜 이럴까" 하면서요(웃음).

당시 저한테 꿈이 있었어요. 지역YWCA 회원들이 소그룹 마을 조직을 만들어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하고 실천을 고민한다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나. 나라는 못 바꿔도 마을은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지역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싶었죠. 그런데 전국의 지역들이 그걸 할 수 있는 지침서를 만드는 작업을 제안하시면서 "네가 해야지 그걸 누가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연합회 활동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Q. 그런데 다시 안양으로 돌아가셨어요.

안양YWCA에 이슈가 생겨 사무총장이 1년 가까이 공석일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어요. 저는 그때 둘째가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30대 초반이라 계속 사양했죠. 그런데 활동가들도, 역대 회장단들까지 다 요구를 하셔서 결국 떠밀려서 가게 됐습니다. 아마 당시 YWCA 조직 중 최연소 사무총장이었을 거예요.

시설장들이 저보다 최소 열 살은 많으셨고, 실무자가 30여 명이었는데 가르쳐줄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갔던 것 같아요.


Q. 그 시기를 어떻게 통과하셨나요?

정말 힘들었죠. 제가 갔을 때 회원 수가 800명까지 떨어져 있었어요. 그전까지 1,500명은 유지하던 곳인데 지역과의 신뢰를 잃는 큰 이슈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바닥이었기 때문에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능력이라기보다 다들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모였던 거죠.

나올 때는 회원이 4,000명이 넘었어요. 빚도 다 갚고요. 주민참여예산제나 성별영향분석평가제도처럼 지역의 제도 기초를 마련하는 데 있어 안양YWCA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운동이 살아나고 활동가들도 성장했어요.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하고 나올 수 있었죠. 차기 리더십 준비도 같이 했어요. 그만두는 데만 3년이 걸렸어요. 가장 뿌듯했던 건, 처음 같이 일했던 안양Y 활동가들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모두 그만두지 않고 든든한 시민운동가로 함께 성장했다는 거예요. 덕분에 떠날 수 있었어요.


Q. 그런데 다시 연합회로 오셨네요.

사무총장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나는 시민운동을 하고 싶어서 현장에 있는데 계속 관리자·행정가가 되어간다는 거였어요. 남은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운동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또 연합회가 발길을 잡았어요. (웃음) 당시 저는 조직의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계속하고 있었어요. 혁신이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연합회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는 게 "맨날 문제 제기하는 무서운 사무총장"이었을 거예요. 제가 지역YWCA 사무총장일 때 회의에 가서 "조직 재구조화와 관련한 5개년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는데, 정작 제가 그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2020년 2월 연합회에 왔고, 오자마자 시작한 게 재구조화였습니다.


Q. 지역과 중앙, 두 자리를 다 겪으며 보이게 된 것이 있나요?

중앙에서는 다양한 실험에 접근할 수 있지만, 지역은 안정성이 중요해요. 대부분 보조사업이나 위탁사업이고 성과도 양적인 실적으로 평가받으니까요. 그래서 실험을 하기 어렵고, 점점 운동이 무뎌질 수밖에 없어요. 프로젝트를 집행하다 보면 거의 실무자가 하게 되고, 시민이나 봉사자가 직접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 않거든요. 그러면 봉사자는 자꾸 '대상'이 되어버리고 1~2년 하다 다른 데로 갑니다. 그 사이클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하다못해 진보적이라는 단체들도 YWCA가 걸어온 전철을 똑같이 밟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고요.

지금은 한국YWCA 중앙 법인 3개의 거버넌스와 행정, 재무, 인사를 맡고 있어 집중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의미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를 끄는 게 또 책임감이에요. 자처하는 건 아닌데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늘 성공적인 것도 아니고 뼈아픈 실패도 하죠. 그래도 누구라도 그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될 때는, 지키는 게 최선일지라도 피하지 못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재구조화, 3년의 기록

"공익활동을 하겠다는데, 주무관청에 맞춰 목적사업을 떼어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요."

Q. YWCA 재구조화를 하게 된 배경부터 들려주신다면요?

너무나 오래된 조직이다 보니 그동안 법인격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었어요. 일제강점기 때부터 존재해왔고, 관련 제도가 완성되기 전부터 이미 시민들에게 인정받던 조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법인·공익법인 관련 제도가 가파르게 새로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그 구조 그대로 살고 있었는데 법이 바뀌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겁니다. 특히 세법이 그랬어요. 그러다 세무적인 이슈로 문제가 터졌습니다. 

알고 보니 전국이 하나의 큰 법인에 묶여 있어서, 중앙 법인이 지역의 여러 사업에 대한 혜택이나 구조를 다 획득하는 게 불가능했어요. 안양 한 곳만 해도 개별 사업 허가가 어마어마한데 그걸 중앙 법인이 어떻게 다 갖고 있겠어요. 이렇게 큰 덩어리로는 변화하는 제도를 따라갈 수 없겠다고 판단해 법인 분리를 시작한 겁니다. 그걸 재구조화라고 불렀어요. 사단법인 시민 이사이신 이희숙, 전규해 두 변호사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Q. 지역의 불안감도 컸을 것 같아요.

컸죠. 전국에 고용된 인원이 몇 명인지, 시설이 몇 개인지조차 파악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관리 측면에서 중앙법인의 책임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아직 겪지 않은 지역은 체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있으면 되지 왜 그러는데" 하고요. 게다가 중앙법인이 대행해주던 행정 업무가 각 지역에 생기니 불편하셨죠. 그걸 해소하느라 전국의 지역YWCA를 한 곳당 두 번씩은 갔던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 지역 YWCA가 53개소였는데, 그중 3개 YWCA는 스스로 판단해 해산하는 아픈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어서 로드맵부터 만들어야 했어요. 5개년 계획으로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3년 만에 끝났어요. 처음 법인을 설립한 곳이 2020년 9월, 마지막이 2023년 가을이었어요. 지자체가 "여기는 볼 것도 없다"며 허가 받을만한 곳을 먼저 넣는 전략을 썼습니다. 그 지역이 먼저 뚫으면 협상할 때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상담했던 걸 전부 기록으로 남겼어요.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 못 하면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Q. 전국을 돌면서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걸 실감하셨다고요.

정말 많았죠. 지침이나 기준이라기보다 공무원이 생각하는 그때 그때의 '취향'에 맞추는 것에 가까웠어요. 문서 스타일도 어떤 사람은 "제1조, 가나다라"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동그라미 숫자를 원하고요. 이건 취향이구나, 이 사람이 무슨 색깔을 좋아할지 어떻게 아나 싶었죠.

그러면서 행정이 이 정도로 일관성이 없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지역에 있으면 내 지역만 보이는데, 연합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니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죠. 3년의 기록을 정리해보니, 담당 공무원이 바뀌지 않아도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또 바뀌더라고요. 봄에 했던 얘기와 가을에 했던 얘기가 다르고, 국장이 바뀌거나 민원이 들어오면 말이 또 바뀌는 겁니다. 물론 생각보다 호의적이었던 경우들도 있었어요.

지역YWCA마다 역량 차이도 있어서, 어려워하는 곳은 연합회 실무팀에서 서류 작성 컨설팅까지 했습니다. 1대 1로 앉아 도와드릴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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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공익단체 남발을 왜 걱정하죠? 더 많아지고 풍성해져야 시민들이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겁니다."

Q.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주의를 두고 규제 완화 목소리도, 이후 관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비영리법인에 대한 신뢰와 공익성, 그리고 자율성은 당연히 지켜야죠. 바꿔야 할 것은 규제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게, 우리가 오랫동안 규제의 틀 안에서 살다 보니 이걸 당연한 질서로 여기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영리사업자가 허가 안 받고 사업하는 건 낙관하면서, 비영리는 남발될까 봐 걱정을 해요. 공익활동을 하겠다는데 왜 남발을 걱정하죠?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비영리 안에 있는 분들조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만큼 규제받는 데 익숙해졌구나 싶었습니다.

그럼 이걸 누가 관리하나요? 당연히 행정 조직이 아니라 시민이 감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영리에서 일어나는 사기나 담합도 형사 사법 체계가 처벌을 하지, 그걸 위해 건강한 시장경제 활동 전체를 막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비영리는 영리와 달리 데미지가 훨씬 큽니다. 그러니 비영리 스스로도 위축되는 거예요.

더 많아지고 풍성해져야 시민들이 참여하고 더 많이 감시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요. 지금은 규제가 너무 복잡해서 지키고 싶어도 못 지켜요. 1인 단체가 이걸 다 지키면서 공익활동을 할 여력이 있을까요? 몰라서 못 한 것, 행정력이 부족해 못 한 것조차 죄책감을 크게 느끼게 되는데 언론에는 크게 보도되니까요. 그건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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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긴다는 것


Q.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묶인 비영리·공익법인』이라는 제목에 담고 싶으셨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요?

토론이나 발표를 할 때마다 늘 그 신화 그림을 띄워 놓고 이야기했어요.

YWCA가 오랫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목적사업 분야가 다양한데, 제일 황당했던 게 법인을 만드는데 주무관청에 맞춰서 목적사업을 떼어내야 한다는 거였어요. 공익활동을 어떻게 행정기관의 업무 소관 범위에 맞출 수가 있습니까. 요즘같이 융합·복합으로 전환되는 시대에, 관리감독이 편하려고 부서를 정하고 그 부서 업무에 따라 목적사업을 맞춘다는 게 정말 황당했어요.

그런데 그게 변하기 어려운 이유가 민법 제32조라는 조항 하나 때문이라는 데 주목하게 됐습니다. 파고 들어가면 파생되는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까지 가면 결국 다 거기더라고요.


Q. 그래서 책으로 만드셔야겠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한 번의 토론회는 자료집으로 끝나잖아요. 그런데 여러 곳에서 저희 이야기를 주목해 연구자들이 논문에 인용하시는 걸 보게 됐어요. 이참에 재구조화 기간 동안 자문해주셨던 위원들과 논의해 책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대중서로 내면 토론회에 오지 않아도 우리가 말하는 문제점을 알릴 수 있지 않겠나 싶었어요. 저자들도 다 무료로 필진이 되어주셨습니다.


Q. 조직의 경험을 공공의 자산으로 만드신 셈이네요.

공익적인 활동을 한다는 조직은 그 일이 내부를 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반드시 사회적 의미와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걸 정리하고 설명하는 건 저희의 몫이죠.  우리 조직만을 위한 일이었다면 제가 뛰어들지 않았을 거예요.

100년 가까이 된 YWCA가 법인 하겠다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민 조직이 법적 책임을 지고 일하겠다며 몇 년을 씨름해야 한다면 이게 말이 되나요. 그래서 이건 정말 알려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 YWCA는 이미 다 법인이 됐으니 우리 문제는 아니에요. 그런데 설립보다 운영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합리가 더 많습니다. 설립할 때는 "안 해주면 법인 안 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설립하고 나면 주무관청 앞에서 말 한마디 하기가 어려워져요.


Q. 재구조화가 조직 안에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외형만 바꾼 게 아니라 내부 거버넌스를 완전히 바꿨어요. 이 자체가 100주년을 준비하는 대대적인 조직 혁신의 과정이었습니다. 건물을 청년들과 공익활동의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내어주는 공간의 혁신, 구조와 리더십의 혁신, 지역의 의견을 더 반영하기 위한 혁신이 있었어요.

재구조화가 끝난 뒤에도, 70년 가까이 바뀌지 않은 법적 틀을 바꾸는 데 YWCA가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걸 이사회도 많이 느꼈습니다. 회장님도 "YWCA가 나서줬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많이 받아 안으셔서 조직적으로 결의를 하게 됐고, 공익법인 제도개선 추진단도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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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시민, 토양을 만드는 일


Q. 5기 이사로 함께하시다가 이번에 7기 이사로 다시 결합하셨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시민은 어떻게 다른가요?

정말 많이 달라서, 아주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조직에는 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시기가 있잖아요. 제가 처음 들어갔을 때가 딱 그 시기였어요. 서울시NPO지원센터 위탁이 종료되면서 말도 못할 상황들을 겪었고, 그 이후에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방향을 찾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방향은 알 것 같은데 지속가능한 구조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제일 큰 건 리더십의 변화가 이렇게 다른 조직을 만드는구나 하는 걸 생생히 경험했다는 거예요. 쇠퇴했다가 재활성화되는 조직의 모델을 시민이 보여준 겁니다.

지금은 정책플랫폼으로서 실제로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게 굉장히 큰 자양분이 됩니다. 개별 단체는 하기 어렵거든요. 각각의 미션과 중심 영역이 있으니까요. 아까 말씀드린 규제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정책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는 데 있어 시민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시민사회 안에서 시민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시민은 사업 단체가 아니잖아요. 어떤 부분 운동을 하는 단체도 아니고요. 시민사회의 생태계와 토양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 흙에 물 주고 거름 주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싹을 낼 수 있게 계속 땅을 다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과는 우리 것이 아닐 수 있어요. 성과를 원하는 시선에서 보면 답답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얼마나 중요한 활동인지 시민사회에서는 깨닫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사단법인 시민을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한다면 어떤 제목을 붙이시겠어요?

『정책플랫폼, 시민』이요.

다른 게 떠오르지 않아요. 그게 비전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30여 년의 시간을 따라가는 동안 한 가지 태도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 앞에서 결국 손을 드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자기 조직의 경험으로만 남기지 않고 기록해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것. "우리의 시간은 사회적 책임을 가지는 시간"이라는 말씀을, 저희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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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어 : 사무처 김유리 활동가, 박희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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