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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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리는 자유, 비영리는 허가: 불균형의 기원
뉴스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에 정말 다양한 허가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판 중계 허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토지거래허가제 등등. 특별히 고민해보지 않더라도 허가가 어떤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정부든, 법원이든 권한이 있는 기관이 허용해야만 특정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기본적으로는 금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절차에 대한 안내 @경기도청
비영리법인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설립할 수 있다. 원래는 설립이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는 뜻이다. 왜일까? 1957년 민법안 심의록 상권 28쪽에 등장하는 당시 입법자들의 생각은 이렇다: “공익법인 설립에 있어서는 허가주의와 준칙주의, 자유방임주의 등이 있는바 공익사업을 표방하면서 실은 악질행위를 감행하는 실례가 허다한 한국의 현실로 보아서는 허가주의를 채택한 초안의 태도가 타당하다.” 간단히 말하면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수립 무렵 태어나 고난의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입법자들에게는 비교적 익숙했을 국가중심・민간통제의 관점은 이렇게 법률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민간 비영리활동을 잠재적 사기 또는 국가질서 문란행위로 보는 법의 정신은 평소 비영리법인을 감독할 권한을 누리고 때로는 필요에 따라 동원하거나 통제하기를 원하는 행정, 자극적 소재를 찾는 언론, 비영리에 무관심한 국회와 세간의 막연한 인식 속에 유구히 이어져 내려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주식회사는 누구라도 언제든 마음껏 세울 수 있고 처음부터 그랬다. 회사는 허가받을 필요 없이 법이 요구하는 요건과 절차를 갖춰 등기를 하면 설립된다. 서류상 회사를 만드는 게 워낙 쉽다 보니 ‘유령회사’, ‘페이퍼컴퍼니’라는 말도 일상에서 흔히 사용된다. 투명하게 운영되며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경제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횡령, 사기, 탈세, 책임회피 등의 수단으로만 회사가 활용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나쁜 일이 벌어져도 대개는 그런 일을 한 사람 개인을 탓하지, ‘주식회사란 게 원래 그 모양이지’ 하고 비난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주식회사 제도의 부작용이 심각하니 국가가 주식회사의 설립을 금지하고 재정능력이나 투명성, 사업성이 검증된 경우만 설립을 허가해야 한다고 하면 실없는 소리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 기준 없는 재량이 만든 비영리 설립의 장벽
설립 허가주의는 급속도로, 대규모로, 다양한 분야와 양태로 발전한 민간단체의 결사와 활동에 대해 주무관청 담당 공무원이 제멋대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제한을 할 수 있는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주무관청의 담당자가 보기에 목적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민원이 들어왔거나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어서, 우리 부서에서 담당하는 일인지, 다른 부서로 가야 하는 일인지 애매해서, 담당자가 법인 감독 경험이 없어 자신이 없어서, 관리해야 할 법인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해당 관청 내에 법인 설립을 최대한 해주지 말라는 지시나 분위기가 있어서, 담당자 개인이 비영리활동에 안 좋은 인식이 있어서, 내가 설립을 허가해준 법인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까봐서 등등, 설립을 허가해주지 않을만한 현실적 이유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법에는 법인 설립에 관하여 구체적인 요건이 전혀 없으므로 주무관청이 재량에 따라 결정한다. 그러므로 기준은 주무관청에 따라, 주무관청 내 부서에 따라, 담당자의 경력과 성향에 따라, 동일한 담당자라도 시기별 정책이나 부서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게다가 대법원은 그간 판례를 통해 주무관청의 재량을 사실상 무한정 허용해왔기 때문에, 허가를 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내려놓고 기본재산 액수, 회원 수, 사무실 위치, 목적사업, 예산 등 여러 요소 중 적당히 문제 삼을 명분을 만드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 단체는 청소년의 사회참여 및 동아리활동 활성화를 목적사업으로 하였는데, 법인 설립을 위한 사전협의 과정에서 주무관청은 청소년 정치활동을 조장하는 사업이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고 나중에 결국 설립이 불허되었다. 물론 공식적인 이유는 ‘우리 관할이 아니다’, ‘수입이 불안정하다’, ‘주사무소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건을 갖추어 다시 신청할 테니 기준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법무부는 성소수자의 인권증진을 위해 활동하려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주무관청이 아니다’는 사유로 거부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거부처분의 취소소송에서 제1심1) 및 항소심2) 법원은 ‘원고의 활동이 차별로 침해받는 개인의 권리에 관한 문제로서 인권옹호와 관련돼 있으므로 원고는 법무부가 주무관청인 인권옹호 단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3)
해당 단체는 법무부 이전에 서울특별시에도 설립허가신청을 하였지만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허가 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기 곤란하면 일단 묻어두는 일도 가능하다. 최근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변희수재단의 설립을 무작정 미루고 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법인 설립허가 지연에 따라 대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 허가제가 낳은 역설: 비법인단체의 양산
이런 사례들은 모두 허가제가 얼마나 자의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결과, 법인 설립이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연되거나 아예 설립을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불허가처분에 대한 다툼은 사실상 봉쇄된다. 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여러 사람들의 뜻, 계획, 재산이 제자리에 묶여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가능성도 희박한 행정심판과 소송에 시간과 돈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주무관청이 허가를 좀 더 잘해준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그곳의 업무관할에 맞게 목적사업을 잘라내고서 설립허가 신청을 하기도 한다.
설립만이 문제가 아니다. 법은 정관변경도 주무관청의 허가, 기본재산의 처분도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한다. 현장에서는 주무관청이 허가를 해주지 않아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거나, 재무구조나 조직개편에 실패하는 일도 쉽게 일어난다. 이제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서, 비영리법인들이 알아서 허가를 받을 일이 없도록 자가 검열과 통제를 하는 지경이다.
설립 허가주의의 목적이 민간활동의 순치(馴致)였다면 아주 잘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지자체에 정치적으로든 행정적으로든 부담이 되는 법인은 태어나지도 못하고, 번창하기도, 살아남기도 어렵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는 법인 아닌 단체(법적으로는 비법인재단, 비법인사단이라고 부른다)가 양산되었고, 관련 법리가 발달했다. 법인이 아닌데도 법인처럼 재산도 소유하고 계약도 체결할 수 있게, 법률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한다. 로스쿨 학생들도 민법 법인편을 배울 때 법인보다 비법인사단에 관한 판례를 더 많이 공부한다는 농담을 한다.
# 헌법과 충돌하는 일제 식민잔재, 비영리 설립 허가제
대한민국 헌법은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제21조 제2항). 설립허가주의는 이 헌법의 규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허가제가 운영되는 실태 역시 엉망이니, 위헌성이 더욱 명백하다.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더하여, 우리 민법은 ‘사적자치의 원칙’을 근간에 둔다. 사인 간의 법률관계는 자유로운 의사합치에 의하여 결정하고,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는 유독 사적자치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지금까지도 비영리법인의 설립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고 있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민간의 결사는 자율에 맡겨두는 관점이 영리와 비영리를 구별하지 않고 일관되게 작동하는 것이다.
광복 후 1957년 국회는 독자적인 신(新)민법 제정 논의에 나섰고 이 때 제정된 민법이 현재에 이른다. 당시 국회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국가에서는 이미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비영리법인의 설립에 허가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조사해서 잘 알고 있었다.4) 당시 일본, 중국 민법은 허가주의를 택했지만, 비영리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의 설립에 관한 것이었다.5)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1912년 조선민사령을 제정하여 일본의 민법을 빌려다 썼기 때문에, 허가주의 자체에는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립 허가주의는 일제의 식민잔재다. 조선인이 자유롭게 결성한 공동체는 법적 단체가 아니고 일제에 도전하지 않는 한에서만 존속을 보장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저항세력을 해체하고, 공동체가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착취를 원활히 하려는 수단으로서 허가주의가 그대로 조선에 도입되었다는 학계의 비판도 있다.6)
# 시대가 변해도 국가 통제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비영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국회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 자진해서 더 강력한 규제를 택했다. 공익법인을 넘어 비영리법인까지 허가를 받도록 하는 가장 폭넓은 규제는 당시 만주국 민법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민법을 마련하면서도, 유독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제국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여 세운 (그리고 13년 만에 사라진) 식민국가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게다가 입법 목적으로는 ‘공익사업을 표방하며 악질행위를 감행’ 하는 걸 막겠다고 하였으면서, 정작 통제의 대상은 비영리 일반으로 두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영리법인을 무슨 이유로 통제하는 것인지는 침묵한다.
그러므로 추정해볼 뿐이다. 당시 학술, 장학, 기예, 자선 등으로 협소하게 정의되었던 ‘공익’의 범주를 넘어가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 중간적인 단체들은 어디인가. 정부의 정책이나 방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자율과 독립을 주장하며 통치 권력에 균열을 낼 우려가 있는 지역 공동체가 타겟이 아니었을까. 시민사회의 본격적인 태동을 우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점에서는 독립정부도 식민 통치 권력과 이해관계를 같이한 것은 아닐까.
1957년은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개 ‘라이카’가 지구에서 우주로 날아간 최초의 동물이 된 해이기도 하다. 그 후로 65년이 지났다. 소련이 사라진지도 30년이 넘었지만 오래 전 죽은 스탈린의 유령이 러시아에 되살아났고, 지금까지 우주로 쏘아올려 지구의 궤도를 떠도는 인공위성만 해도 2만 개 정도로 추정된다. PC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AI가 인간의 생활부터 인식까지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재편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바깥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기업논리가 배가된 사회적 가치 운동은 더 없이 활발하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비영리를 보는 우리 법제의 근본적 관점은 시대가 얼마나 변했든, 식민지배자든 군사정권이든 문민정부든 달라진 적이 없다.
일제의 침탈은 80년 전 끝났지만, 비영리 영역은 여전히 국가의 통제 아래 식민지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에 허가주의를 도입했던 일본은 오히려 2008년 공익법인과 비영리법인을 분리하고, 비영리법인은 자유롭게 설립하되, 세제혜택 등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별도의 인정을 받아 공익법인이 되도록 제도를 개혁했다. 재량에 의한 설립허가는 예측가능성이 낮아 공익활동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자의 의욕을 꺾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제는 민간 비영리 부문의 공익적 활동의 역할과 그 발전은 매우 중요하다며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법인격 취득과 공익성 판단을 분리하고 설립은 간소화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 출처:공익법인제도의 근본적 개혁에 관한 기본 방침 - 平城 15년 6월 27일 閣議決定. |
# 법인격에서 배제된 비영리,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등 시민
국내의 위헌 논란에 관하여 최근 정부 측 주장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법인 설립 허가를 거부하더라도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건 가능하므로, 허가주의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애당초 법인 제도를 왜 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인은 법적 지위를 획득한 단체라는 공신력과 거래의 안정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법인의 소재, 기관이나 자산규모 등 내부관계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등기하고, 이를 통해 신뢰를 확보한다. 그런데 비영리 단체로 활동하면 되지 굳이 법인을 설립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은, 비영리에게는 이런 제도적 혜택을 전면 금지하더라도, 법적인 권리·의무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말과 논리적으로 같다. 정부는 영리법인에 대해서도 이런 취급을 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 조문영의 질문7)을 떠올린다. “아이와 노인을 살리는 돌봄노동, 지구를 살리는 환경운동, 마을을 살리는 공동체 활동은 왜 노동 바깥의 노동에 머물러야 하나?” 비영리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함에 그치지 않는다. 법적 존재 가치와 필요마저 부정 당한다.
# 허가제 폐지와 비영리 설립 제도의 전환
비영리법인의 설립 허가주의는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그 대안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이미 지난 여러 차례의 민법 개정 시도에서 드러난 바 있는데, ‘인가주의’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가로 바뀐다고 하여 주무관청의 임의적 통제가 사라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허가와 인가의 이론적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기부금품 모집을 위한 등록제도마저도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다.
영리법인과의 형평을 고려해서 법률상 요건을 갖춘 후 등기하면 설립하는 것으로 하고 주무관청을 없애야 한다. 그러면 비영리 활동을 누가 감시하느냐는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제도와 같이 내부통제 제도와 공개를 통한 민간 차원의 감시를 바탕으로 하면서 필요한 경우 소송과 법원의 개입을 통한 규제가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지난 3월 국무총리 규제혁신추진단은 '민법상 비영리법인 설립 및 운영 규제혁신'을 개선과제로 선정 @국무조정실
여전히 옛 입법자들과 뜻을 같이 해서 “공익사업을 표방하여 악질행위를 감행할 것”이 우려된다면, 국가가 비영리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을 별도로 선별하고 관리하면 된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미국, 영국, 일본 등 국외의 제도와 유사하게 비영리법인이 공익활동을 하면 ‘공익법인’으로 지정을 받아 국세청의 관리감독을 받고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 통합된 주무관청으로서 공익위원회를 도입하여 전문성과 규제의 일관성을 높이자는 논의도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현재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부디 내년에는 비영리 종사자들을 오래된 식민지로부터 구해내는 가장 중요하고 담대한 첫 걸음을 뗄 수 있기를 바란다.
1) 서울행정법원 2016. 6. 24. 선고 2015구합69447 판결
2) 서울고등법원 2017. 3. 15. 선고 2016누54321 판결
3) 대법원 2017. 7. 27.자 2017두41283 판결로 확정 (심리불속행 기각)
4) 국회민의원사무처(1957), “민법안심의록,” 상권. 27-28.
5) 비영리와 공익은 구별된다. 우리 법제에서 비영리는 이익을 배분하지 않는다는 뜻에 한정되는 것이어서, 목적사업이 특정한 이익집단을 위한 목적사업을 수행하더라도 구성원 간 이익분배가 없으면 비영리라는 것이 통설이다. 각종 산업, 직업별 협회를 떠올려보자. 골프클럽 중에도 비영리법인이 있다. 반면 공익은 사회 일반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6) 정환담(1998), “민사법인설립제도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 비교사법 제5권 1호(통권 8호).
7) 조문영(2024), “비정규직과 기본소득”, 《연루됨》, 글항아리.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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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쁜 일이 벌어져도 대개는 그런 일을 한 사람 개인을 탓하지, ‘주식회사란 게 원래 그 모양이지’ 하고 비난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주식회사 제도의 부작용이 심각하니 국가가 주식회사의 설립을 금지하고 재정능력이나 투명성, 사업성이 검증된 경우만 설립을 허가해야 한다고 하면 실없는 소리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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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에는 법인 설립에 관하여 구체적인 요건이 전혀 없으므로 주무관청이 재량에 따라 결정한다. 그러므로 기준은 주무관청에 따라, 주무관청 내 부서에 따라, 담당자의 경력과 성향에 따라, 동일한 담당자라도 시기별 정책이나 부서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게다가 대법원은 그간 판례를 통해 주무관청의 재량을 사실상 무한정 허용해왔기 때문에, 허가를 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내려놓고 기본재산 액수, 회원 수, 사무실 위치, 목적사업, 예산 등 여러 요소 중 적당히 문제 삼을 명분을 만드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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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성소수자의 인권증진을 위해 활동하려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주무관청이 아니다’는 사유로 거부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거부처분의 취소소송에서 제1심1) 및 항소심2) 법원은 ‘원고의 활동이 차별로 침해받는 개인의 권리에 관한 문제로서 인권옹호와 관련돼 있으므로 원고는 법무부가 주무관청인 인권옹호 단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3)
해당 단체는 법무부 이전에 서울특별시에도 설립허가신청을 하였지만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허가 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기 곤란하면 일단 묻어두는 일도 가능하다. 최근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변희수재단의 설립을 무작정 미루고 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법인 설립허가 지연에 따라 대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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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만이 문제가 아니다. 법은 정관변경도 주무관청의 허가, 기본재산의 처분도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한다. 현장에서는 주무관청이 허가를 해주지 않아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거나, 재무구조나 조직개편에 실패하는 일도 쉽게 일어난다. 이제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서, 비영리법인들이 알아서 허가를 받을 일이 없도록 자가 검열과 통제를 하는 지경이다.
설립 허가주의의 목적이 민간활동의 순치(馴致)였다면 아주 잘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지자체에 정치적으로든 행정적으로든 부담이 되는 법인은 태어나지도 못하고, 번창하기도, 살아남기도 어렵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는 법인 아닌 단체(법적으로는 비법인재단, 비법인사단이라고 부른다)가 양산되었고, 관련 법리가 발달했다. 법인이 아닌데도 법인처럼 재산도 소유하고 계약도 체결할 수 있게, 법률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한다. 로스쿨 학생들도 민법 법인편을 배울 때 법인보다 비법인사단에 관한 판례를 더 많이 공부한다는 농담을 한다.
# 헌법과 충돌하는 일제 식민잔재, 비영리 설립 허가제
대한민국 헌법은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제21조 제2항). 설립허가주의는 이 헌법의 규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허가제가 운영되는 실태 역시 엉망이니, 위헌성이 더욱 명백하다.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더하여, 우리 민법은 ‘사적자치의 원칙’을 근간에 둔다. 사인 간의 법률관계는 자유로운 의사합치에 의하여 결정하고,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는 유독 사적자치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지금까지도 비영리법인의 설립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고 있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민간의 결사는 자율에 맡겨두는 관점이 영리와 비영리를 구별하지 않고 일관되게 작동하는 것이다.
광복 후 1957년 국회는 독자적인 신(新)민법 제정 논의에 나섰고 이 때 제정된 민법이 현재에 이른다. 당시 국회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국가에서는 이미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비영리법인의 설립에 허가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조사해서 잘 알고 있었다.4) 당시 일본, 중국 민법은 허가주의를 택했지만, 비영리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의 설립에 관한 것이었다.5)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1912년 조선민사령을 제정하여 일본의 민법을 빌려다 썼기 때문에, 허가주의 자체에는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립 허가주의는 일제의 식민잔재다. 조선인이 자유롭게 결성한 공동체는 법적 단체가 아니고 일제에 도전하지 않는 한에서만 존속을 보장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저항세력을 해체하고, 공동체가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착취를 원활히 하려는 수단으로서 허가주의가 그대로 조선에 도입되었다는 학계의 비판도 있다.6)
# 시대가 변해도 국가 통제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비영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국회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 자진해서 더 강력한 규제를 택했다. 공익법인을 넘어 비영리법인까지 허가를 받도록 하는 가장 폭넓은 규제는 당시 만주국 민법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민법을 마련하면서도, 유독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제국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여 세운 (그리고 13년 만에 사라진) 식민국가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게다가 입법 목적으로는 ‘공익사업을 표방하며 악질행위를 감행’ 하는 걸 막겠다고 하였으면서, 정작 통제의 대상은 비영리 일반으로 두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영리법인을 무슨 이유로 통제하는 것인지는 침묵한다.
그러므로 추정해볼 뿐이다. 당시 학술, 장학, 기예, 자선 등으로 협소하게 정의되었던 ‘공익’의 범주를 넘어가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 중간적인 단체들은 어디인가. 정부의 정책이나 방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자율과 독립을 주장하며 통치 권력에 균열을 낼 우려가 있는 지역 공동체가 타겟이 아니었을까. 시민사회의 본격적인 태동을 우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점에서는 독립정부도 식민 통치 권력과 이해관계를 같이한 것은 아닐까.
1957년은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개 ‘라이카’가 지구에서 우주로 날아간 최초의 동물이 된 해이기도 하다. 그 후로 65년이 지났다. 소련이 사라진지도 30년이 넘었지만 오래 전 죽은 스탈린의 유령이 러시아에 되살아났고, 지금까지 우주로 쏘아올려 지구의 궤도를 떠도는 인공위성만 해도 2만 개 정도로 추정된다. PC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AI가 인간의 생활부터 인식까지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재편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바깥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기업논리가 배가된 사회적 가치 운동은 더 없이 활발하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비영리를 보는 우리 법제의 근본적 관점은 시대가 얼마나 변했든, 식민지배자든 군사정권이든 문민정부든 달라진 적이 없다.
일제의 침탈은 80년 전 끝났지만, 비영리 영역은 여전히 국가의 통제 아래 식민지배 상태에 머물러 있다.
# 법인격에서 배제된 비영리,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등 시민
국내의 위헌 논란에 관하여 최근 정부 측 주장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법인 설립 허가를 거부하더라도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건 가능하므로, 허가주의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애당초 법인 제도를 왜 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인은 법적 지위를 획득한 단체라는 공신력과 거래의 안정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법인의 소재, 기관이나 자산규모 등 내부관계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등기하고, 이를 통해 신뢰를 확보한다. 그런데 비영리 단체로 활동하면 되지 굳이 법인을 설립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은, 비영리에게는 이런 제도적 혜택을 전면 금지하더라도, 법적인 권리·의무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말과 논리적으로 같다. 정부는 영리법인에 대해서도 이런 취급을 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 조문영의 질문7)을 떠올린다. “아이와 노인을 살리는 돌봄노동, 지구를 살리는 환경운동, 마을을 살리는 공동체 활동은 왜 노동 바깥의 노동에 머물러야 하나?” 비영리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함에 그치지 않는다. 법적 존재 가치와 필요마저 부정 당한다.
# 허가제 폐지와 비영리 설립 제도의 전환
비영리법인의 설립 허가주의는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그 대안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이미 지난 여러 차례의 민법 개정 시도에서 드러난 바 있는데, ‘인가주의’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가로 바뀐다고 하여 주무관청의 임의적 통제가 사라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허가와 인가의 이론적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기부금품 모집을 위한 등록제도마저도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다.
영리법인과의 형평을 고려해서 법률상 요건을 갖춘 후 등기하면 설립하는 것으로 하고 주무관청을 없애야 한다. 그러면 비영리 활동을 누가 감시하느냐는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제도와 같이 내부통제 제도와 공개를 통한 민간 차원의 감시를 바탕으로 하면서 필요한 경우 소송과 법원의 개입을 통한 규제가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지난 3월 국무총리 규제혁신추진단은 '민법상 비영리법인 설립 및 운영 규제혁신'을 개선과제로 선정 @국무조정실
여전히 옛 입법자들과 뜻을 같이 해서 “공익사업을 표방하여 악질행위를 감행할 것”이 우려된다면, 국가가 비영리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을 별도로 선별하고 관리하면 된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미국, 영국, 일본 등 국외의 제도와 유사하게 비영리법인이 공익활동을 하면 ‘공익법인’으로 지정을 받아 국세청의 관리감독을 받고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 통합된 주무관청으로서 공익위원회를 도입하여 전문성과 규제의 일관성을 높이자는 논의도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현재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부디 내년에는 비영리 종사자들을 오래된 식민지로부터 구해내는 가장 중요하고 담대한 첫 걸음을 뗄 수 있기를 바란다.
1) 서울행정법원 2016. 6. 24. 선고 2015구합69447 판결
2) 서울고등법원 2017. 3. 15. 선고 2016누54321 판결
3) 대법원 2017. 7. 27.자 2017두41283 판결로 확정 (심리불속행 기각)
4) 국회민의원사무처(1957), “민법안심의록,” 상권. 27-28.
5) 비영리와 공익은 구별된다. 우리 법제에서 비영리는 이익을 배분하지 않는다는 뜻에 한정되는 것이어서, 목적사업이 특정한 이익집단을 위한 목적사업을 수행하더라도 구성원 간 이익분배가 없으면 비영리라는 것이 통설이다. 각종 산업, 직업별 협회를 떠올려보자. 골프클럽 중에도 비영리법인이 있다. 반면 공익은 사회 일반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6) 정환담(1998), “민사법인설립제도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 비교사법 제5권 1호(통권 8호).
7) 조문영(2024), “비정규직과 기본소득”, 《연루됨》, 글항아리.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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