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시민] 7기 이동식 이사_"시민은 '기도 제목' 중 하나예요."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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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시민'은 시민의 사람(人사이드)을 소개하는 의미와 시민 속으로(inside)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시민의 주축 중의 한 구성원인 이사진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상기하고, 또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  회원님들과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이번 인터뷰이는 이동식 이사님(김해YMCA)입니다. 경북 구미에서 20년, 한국YMCA전국연맹, 서울시 협치담당관, 세종새활용센터를 거쳐 지금은 다시 지역 현장인 김해에 계십니다. 시민사회에서 행정으로, 그리고 다시 시민사회로 이어진 긴 궤적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사)시민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담담하고 솔직하게 들려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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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한 사람의 삶, 그리고 활동가가 되기까지

Q. 최근에 김해YMCA에 새롭게 합류하셨는데요. 익숙하면서도 새로우실 것 같은데, 요즘 가장 마음을 쓰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YMCA의 자원순환관련 경제조직 설립 건으로 세종에 2년 정도 있을 계획이었는데, 세종새활용센터를 위탁운영하면서 개소 및 안정화하는 것까지 3년을 있다가 7월 초에 김해로 가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YMCA 운동에만 몰입했는데,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가능하다면 지평을 좀 넓혀서 지역의 시민사회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활동도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미디어도 레거시 미디어가 다 대체되는 판이잖아요. 기존 시민단체가 가진 한계, 지금 부딪히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는 시간이 될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 차원에서 지역에서 마지막 활동을 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김해라기보다는, 지역운동으로 복귀하는 것을 선택한 거죠.


Q. YMCA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제가 90학번인데, 87년을 겪지는 못했고 전교조가 만들어지던 시기의 혼란이 고등학교까지 밀려들던 때를 지나면서 사춘기를 보냈어요. 대학에 가서 YMCA를 처음 만났습니다.

YMCA에는 목적문이라는 게 있어요. YMCA선배들이 신학들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목적문인데, 그 텍스트에 너무 반해버렸어요. "우리 삶의 지표가 이래야 하는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죠. 핵심은 청년 예수의 삶을 배우고 따라간다는 것, 거기에 한국적 특수성으로 민중의 복지 향상과 평화 통일 같은 것들이 붙어 있어요. 1976년, 군부 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거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보통 YMCA 하면 봉사단체나 종교단체로만 아는 경우도 있는데, 당시에는 민간 영역에서 그래도 조금은 움직임이 있는 단체 중 하나였으니까요.


Q.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냥 학교만 열심히 다니는 시골 청소년이었죠. 경북 봉화군에서 살았는데,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무렵에 전기가 들어왔을 정도로 오지였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영주로 나와 자취를 했으니 독립 생활은 아주 일찍 시작한 셈이에요.

고등학교 때 지역에서 교사들이 양심선언을 했는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고, 그 뒤에 전교조 관련 행사에도 어쩌다 참가하게 됐어요. 그런 것들이 조금씩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학에 가서 학습 모임에 참여하면서, 내가 살아온 한국 사회가 이렇게 기형적이고 불평등한 구조 속에 놓여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가난한 농민의 자녀였고, 마침 우루과이 라운드가 한창이던 때이기도 했거든요. "우리가 이래서 피해를 받고 있구나" 하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신앙적으로 신실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제가 ISTJ인데,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면 잘 안 움직이는 스타일이거든요. 대학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던 목사님이 해방신학 같은 걸 가르치셨는데, 기성 종교 스타일에는 맞지 않아도 개혁적인 종교관은 나름 맞았어요. 목적문 안에 들어 있는 예수, 사회 정의를 외치는 예수가 확 와닿았던 게 더 컸죠.


Q. 활동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나름의 결단이었어요. 원래 공대를 나왔고, 그때는 원서만 내면 취업이 되던 마지막 시대였거든요. 그냥 돈을 버는 직장 생활을 할 것인가, 돈을 못 버는 활동가를 해볼 것인가를 한참 고민했죠. 그러다 이런 일을 해보는 게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제가 있던 학교 학생YMCA 멤버 중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YMCA 실무자가 된 케이스였어요. 그러면서 구미YMCA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어요. 


Q. 구미YMCA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YMCA는 원래 사회교육운동, 사회체육운동, 청소년운동, 시민운동 네 가지를 해요. 그러다 보니 옛날에는 "백화점식 운동단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죠. 그런데 그건 역사가 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어요. 우리나라에 외국 스포츠를 도입한 것도, 신용협동조합을 제일 먼저 만든 것도 YMCA거든요. 그래서 인큐베이팅을 많이 해온 조직 중 하나입니다.

구미에서도 녹색교통운동 간사를 겸임했고, IMF가 터졌을 때는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의 전신 격인 실직가정 지원연대의 구미 담당 간사를 했어요. 쓰레기 문제가 크게 불거졌을 때는 지금 자원순환 분야가 된 구미쓰시협의 간사도 했고요. 경북 쪽은 시민단체가 활발하지 않아서 단체 수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유급 상근자가 있는 단체가 별로 없다 보니 YMCA 간사들이 대체로 겸직을 해야만 했죠.


Q. 그러다 서울, 한국YMCA전국연맹으로 가셨어요.

97년부터 구미에서 거의 20년 YMCA간사활동을 했어요. 35 이 젊은 나이에 사무총장을 맡게되서 10년정도 했고, 연맹에서는 주로 지역협력과 재정, 사회적경제 관련 업무를 3년 정도 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YMCA에 변화와 새로움이 없으면 사라져가는 과거가 될 수 있다, 그냥 역사에 남는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회원 구조 혁신이나 제도 변화 같은 걸 시도하려고 했죠. 파트너와 함께 밀어붙였는데, 둘 다 아웃됐습니다. (웃음) 연맹 리더십도 교체되면서 나름의 벽에 부딪혔고, 더 이상 진전이 안 되던 상황에서 서울시 협치담당관이라는 자리로 이동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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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서울시에서의 시간은, 열심히 학습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어요.결과물을 남겼다기보다 공부를 한 시간이었습니다."

PART 2. 시민사회와 행정 사이, 서울시 협치담당관

Q. 2019년 10월 서울시 협치담당관으로 가셨습니다. 어떤 기대와 문제의식이 있으셨나요?

솔직히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사전 업무보고를 살짝 받아보니 이미 과제가 열 개는 놓여 있더라고요. 12명의 협치지원관과 16명의 행정직원들로부터 매일 보고받고 논의하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저는 서울시 협치를 준비하고 진행되어온 수년의 과정을 함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구석구석 디테일하게 알지는 못했어요. 이렇게 큰 실험들이 이미 이만큼 진행돼 있었구나 하는 걸 와서 알았죠. 다만 그 시점에 행정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은 있었습니다.


Q. 밖에서 보던 행정과 안에서 경험한 행정은 어떻게 달랐나요?

서울시에 가기 전에는 저도 시민사회를 소위 '주류 시민사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어요. 지역에 있을 때는 협치나 시민사회 활성화가 과제이긴 했지만 '온전히 내 일'은 아니었고, 우리 조직이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였죠.

그런데 서울시에 와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현장과 새롭게 분화되는 양상을 보게 됐어요. 그런 차원에서 시민사회를 재정의하는 과정이 저한테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례를 만들 때도 시민과 시민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두고 공론 과정에서 논의가 있었고, 나름 정리를 잘하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해요.

다만 서울시의 시민사회가 제 느낌으로는 생각보다 빈약했어요. 지금도 시민사회끼리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대변형 조직과 생활 기반의 문제 해결형 밀착 조직은 서로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을 때가 많아요. 반목하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요.


Q. 그래서 민간 플랫폼을 구성하는 작업을 하셨던 거군요.

네. 자치구 단위에서 민간끼리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을 여섯 개 정도 구 단위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모인 조직들이 자기 세계에서만 도는 게 문제였어요. 서울시 전체를 바꾸려면 이 조직들의 대표성과 리더십이 모여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기초 단위 플랫폼끼리 모여서 서울시와 대응하는 시민사회 대표 거버넌스를 새로 만들자고 제안했죠. 우리 파트너가 새로 구축돼야 하는데 지금은 없으니, 시민사회와 행정이 만날 수 있는 틀을 새로 만들자고요.

그러다 그만두면서 중단된 거지만, 결국 시민사회가 스스로 자기 결집력을 갖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풀뿌리 시민사회의 힘이 아직 거기까지 성장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재직하시면서 이건 꼭 관철시키고 싶다고 생각했던 정책은 무엇이었나요?

시민사회 활성화 조례였어요. 다른 것들은 이미 시작된 걸 업그레이드하는 거였는데, 이건 원래부터 과제라고 생각하던 것을 입법하고 기본계획을 세우는 과정까지 진행한 거였거든요. NPO지원센터에서 선행 공론 과정을 많이 해두어서 내용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문제는 시민사회 안에서는 논의가 됐는데, 입법을 하는 의회와는 소통이 거의 안 돼 있더라는 겁니다. 이걸 추진하는 층위에서 의회를 교섭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이 충분치 않았을 수 있어요. 주요 시민사회단체의 핵심 멤버들이 들어와 있다기보다 풀뿌리 중심으로 논의를 밀어올린 거였으니까요. 게다가 서울시의회는 워낙 자주 바뀌고, 그동안은 시장의 푸시하는 힘으로 진행돼왔으니 의원들을 설득해서 가겠다는 적극성이 전반적으로 없었어요. 그게 서울시 협치에서 부족했던 지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기존 공익활동 촉진 조례를 대표발의했던 신원철 전 의장께 급히 연락해서 "당신이 대표발의 했던 조례를 당신이 전부개정해주시면 좋겠다"고 했어요. 영향력 있고 우호적인 분을 섭외해 발의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통과될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행정이 입법과 관련된 기술을 동원한 겁니다. 내용이 부족했다기보다, 우리가 소통해야 할 주요 대상자들과 다 잘 소통해야 한다는 걸 배운 셈이에요.


Q. 기억에 남는 다른 성과도 있으신가요?

NPO지원센터를 권역별로 다 만들었는데, 입주 협업 공간은 놓칠 수도 있었어요. "뭐라도 있을 때 시작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받아 앞뒤 안 돌아보고 신속하게 추진한 덕분에 지금 ‘공익활동공간 삼각지’와 같은 공간을 만들수 있게 되었죠.

이 과정 속에서 안타까웠던 건 코로나19팬데믹이 왔다는 거였어요. 사실 제 입장에서는 아름답게 활동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게 와르르 무너진 거죠. 협치는 접촉이 굉장히 중요한데 모든 손발이 묶였으니까요. 원래는 25개 구를 다 돌아다니면서 뭘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된 거예요.

그 와중에 재난 대응 거버넌스를 실험적으로 시도했어요. 중대본 구조 안에 시민사회 재난대응팀을 만든 건데, 어떻게 보면 거버넌스 체계를 한층 더 두텁게 만든 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Q. 반대로 가장 한계를 느낀 지점은요?

거버넌스는 우리가 작동시키는 건데, 개별 거버넌스가 이미 따로따로 있는 상태에서 전체 구조를 점검하고 작동시키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었어야 했어요. 서울시가 시작하면서 복지 거버넌스, 환경 거버넌스 등 각종 거버넌스가 만들어졌는데, 이걸 다 포괄하는 하나의 메타 거버넌스가 필요했거든요. 그게 총괄적으로 구성되지 못하고 개별 이슈가 있을 때만 작동하는 방식으로 실험한 게 다였습니다. 실험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제대로 작동해보지는 못한 거죠.


Q. 서울민주주의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현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국가 시민참여위원회도 그 모델을 따르려 하는데, 합의제 행정기구 운영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서울민주주의위원회는 행정위원회로서는 정책과 현장사업을 겸하는 기구였기 때문에 복잡한 점이 있었죠. 권한의 범위를 어떻게 나눌지가 어렵죠.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첫째, 자문기구로 가면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둘째, 인적 구성에 있어서 기존 행정만 있어서는 안 돼요. 서울시는 민관 공동사무국을 만들고 개방직을 확대했는데, 개방직이 반드시 균형을 맞춰 작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의회와의 관계예요. 서울시는 의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는데, 의회는 견제 기능이니 합의제 기구에 들어올 수 없다며 위원 추천만 했거든요. 협치라는 관점에서 한쪽의 참여가 없으면 계속 갈등 구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민관이 함께 정책을 점검하고 진단·권고하고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기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Q. 시민사회 활동가가 행정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기도 하는데, 경험상 어떠셨나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것도 거버넌스를 확대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봐요.

행정이 가진 경직성이나 작동 원리에 익숙해지면 변화와 혁신을 못 해요.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갈 때 행정은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민사회에서의 다양한 실험적 사고와 경험을 바탕으로 일하는 데는 도움이 되죠.

다만 행정도 하나의 거대한 집단이고 관성이 있는 조직이니 준비는 좀 하고 가야 해요. 그래야 기존 시스템에 포섭당하지 않습니다. 그냥 기회다 하고 훌쩍 가기보다는, 나름의 전문성도 갖추고 좋은 거버넌스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Q. 어느 기사에서 "협치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걸 봤는데, 어떤 맥락에서 그런 표현을 하신걸까요?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협치구조가 급격히 무너진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예상보다 충격이 더 컸던 건 시민사회보다 마을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는 기본적으로 자발성과 독립성이 크기 때문에 의존도가 낮았고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았어요. 반면 마을은 아직 자립할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은 거죠. 아쉽지만 그 일을 계기로 시민사회도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시간이 된 것 아닌가 싶어요.

"협치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한 건, 시민 의식은 충분히 고양되어 있고 복잡다양한 현대사회의 문제 해결은 진보나 보수의 차원이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거버넌스는 이미 보편적인 정치 행위의 수단이자 사회 통합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걸 이념적 프레임에 가두면서 시민과 시민사회라는 공기를 편가르기 대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죠. 정치권의 편가르기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보니 뉘앙스가 좀 다르게 읽힐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런 상황에 몰리지 않으려면 시민사회가 지금보다 두터워져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민참여기본법이나 시민사회 관련 법 제정·개정이 더 필수적이기도 해요. 중대 국면이나 전환의 시기마다 외면하지 않고 나섰던 시민과 시민사회의 헌신을 정당 구조가 독점하는 방식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시민사회에 돌려줘야 할 건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의 힘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체력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Q. 서울시에서의 시간은 개인에게 어떤 시간으로 남았나요?

열심히 학습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어요. 제가 어떤 결과물을 남겼다기보다,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공부의 시간이었습니다.

거버넌스도 그전까지는 '우리 힘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어요. 지역에 있을 때는 웬만한 갈등 사안은 행정이 우리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니까, 우리 조직을 중심으로 한 거버넌스가 가능한 부분도 있었든요. 그런데 그건 굉장히 비적극적인 거버넌스예요. 문제 해결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니까요. 서울시에서는 더 큰 틀의 거버넌스를 위한 조건과 제도·정책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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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가 다양해야 연대도 하고 힘도 작동시킬 수 있는데,그게 없으면 홀로 선 나무처럼 혼자 이것저것 다 견뎌야 하는 피로감이 있어요."

PART 3. 다시 지역과 현장으로

Q. 서울시 이후 세종새활용센터로 가셨어요. 자원순환이라는 주제는 조금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이 운동을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간 건 아니었어요. 서울시를 그만두고 대선 사회혁신 추진단 일을 넉 달 가까이 하고, 그 이후 쉬고 있던 중에 세종YMCA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자원순환 협동조합을 경제 조직으로 셋업해달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원래 구상대로면 충분히 수익이 나는 조직이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활동하는 협동조합으로 유지하면서 활동가 교육·양성을 하다가 새활용센터를 수탁받게 된 겁니다. 막상 들여다보면서 과거에 쓰레기 문제 해결 운동을 했던 경험이 다시 소환됐어요. 한쪽에는 탄소중립, 한쪽에는 자원순환, 이 두 축이 기후변화와 지속가능 사회에 대응하는 방식인데, 앞으로 실제 시민들의 삶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운동 중 하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센터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으셨나요?

보통 그런 유형의 센터라고 하면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 중심으로, 견학이나 체험만 하면 되는 곳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중간지원조직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활용 스타트업을 입주·양성하고, 마을운동과 생활 자원순환 운동을 결합해서 지역사회 마을운동을 기획하고, 정책 관련 TF 자문기구도 운영하는 거였어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지역사회 운동 플랫폼 기능을 하도록요. 지금은 매주 수리 활동이 일어나고 입주 공방들도 경제적 자립을 준비하면서 한 단계씩 가고 있어요.

사실 이런거 인큐베이팅 하는 게 제 전문이에요. (웃음) 과거에 사회적기업, 장난감도서관을 만들 때도, 지역아동센터를 처음 세팅할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행정이 아니라 시민 조직이 만드는 플랫폼, 통합 체계로서 기능하는 것에 원래 관심이 있었거든요.


Q. 김해에서 본 지역 시민사회는 어떤가요?

지금 살펴보는 중인데요, 인구 56만 명이니까 작지 않은 도시인데 시민사회는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시민사회 조직을 표방하는 단체나 모임 자체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시민사회가 다양해야 연대도 할 수 있고 시민사회의 힘이라는 걸 작동시킬 수 있는데, 그게 없으면 홀로 서 있는 나무처럼 혼자 이것저것 다 견뎌야 하는 피로감이 있거든요. 그래서 YMCA가 지역시민사회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조직들을 만들고 돕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작업을 해야겠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면 자원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재정 기반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YMCA 같은 조직은 재정에 도움이 되는 사업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으니까, 저는 모금이나 자원 개발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연맹에 있을 때도 '후원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제 스스로 상정한 핵심 과제였어요. 전국 기관을 통합하는 걸 제안해서 서른 군데 정도 동의를 받았는데, 통합 시스템에서 분기에 한 번만 모금 프로세스를 가동해도 엄청난 사이즈의 근간이 형성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구미에 있을 때는 기부 보험을 처음 시작했어요. 일정 기간까지 보험료를 내면서 보험 적용을 받고, 사망 시 보험 수령금 중 1천만 원을 기부하게 되는 방식이었는데, 한국적 분위기에서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빨리 죽으라는 건가" 하시는 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미래를 생각하면 그런 영역은 활성화돼야 한다고 봐요.

당시 제 재임 기간의 목표는 청소년운동 기금 1억, 시민운동 기금 1억, 간사 복지기금 1억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런 걸 하는 조직과 하지 않는 조직은 시간이 지나면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생각하거든요.


Q. 행정이나 지원조직을 경험한 분들 중에는 "다시 현장에 가고 싶지만 모금은 못 하겠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요청하지 않으면, 모금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을 하는 당위성도 그만큼 설명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재원은 어쨌거나 시민들에게서 나와야 하는 건데, 그만한 합당한 논리나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일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본다면 모금과 이 일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고민이 담기고 노력하는 만큼 결과적으로 반응도 그렇게 오는 것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모금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을 하는 당위성도 그만큼 만들지 못해요.모금과 일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단법인 시민, 그리고 앞으로

Q. 사단법인 시민은 언제 처음 알게 되셨나요?

서울시에 처음 와서 시민을 만나게 됐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느낌이 아주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NPO지원센터의 수탁 주체인데 조직이 좀 약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법인이 더 강해져야 한다는 과제가 있구나 하고 보게 됐어요. 예전 같으면 큰 단체들이 이걸 받아서 했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기존 큰 조직들이 가진 관성에 확 휩쓸리지 않기 위해 허브 조직을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은 저에게 하나의 숙제 같은 느낌이었고, 관심 있게 지켜볼 부분이었어요.


Q. 이사 제안을 받아들이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서울시를 마치면서 시민이 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후원도 좀 하고 시간이 되면 올라와서 도움도 되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는데, 역량도 부족하고 시간이 안 돼서 자주 오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마음의 빚처럼 남아 있었는데, 작년 2월에 제안이 와서 하게 되었어요.

동행도 사실 좀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동행 이사도 했었고, 회원 확장 사업 때도 이사여서 애를 많이 썼거든요. 공익활동가 공제회를 만들기 위한 법 제정 TF에도 참여했고요. 지금 시민사회나 활동가들을 돕는 베이스캠프로서 시민, 그리고 동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사)시민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시나요?

원래 크게 보면 시민재단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어느 날 한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처음에는 좀 서툴고 부족한 상태로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왔고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도 "시민이라는 데가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사회를 전문적으로 관찰하고 전망하는 조직, 연구하는 조직이 필요했는데 그 기능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풀뿌리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플랫폼으로서도 중요하겠죠. 다만 플랫폼을 만드는 기능은 다른 채널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봐요.

제가 보기에 핵심적으로 더 중요한 건, 시민사회를 조사·연구하고 정책적으로 비전을 만드는 기능입니다. 말하자면 시민사회 정책 싱크탱크죠. 그게 첫 번째로 중요하고, 그다음에 역량이 되면 재원을 개발해서 그 기능을 서포트하는 방향이면 좋겠어요.

당장은 서울 중심을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과정이 쌓이면 우리 사회에 지금은 없는 시민재단 같은 자리매김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정도의 비전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이사님에게 '사단법인 시민'이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좀 그런데요. 기독교적으로 이야기하면, 기도 제목 중의 하나라고 할까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안, 뭔가 잘되기를 바라는 존재를 두고 기도 제목이라고 하잖아요. 항상 마음 한 켠에 있는 거죠.


이동식 이사님과의 인터뷰는 한 사람의 이력을 따라가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지난 30여 년 한국 시민사회가 통과해온 장면들을 함께 되짚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역에서 중앙으로, 시민사회에서 행정으로, 그리고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기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우리의 재원은 시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사)시민을 '기도제목'이라 부르는 마음에 기대어, 저희도 더 단단하게 걸어가겠습니다 :)

📢 인터뷰어 : 사무처 김유리 활동가, 김승순 활동가, 박희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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